청소년 사역자들이 적용해야할 성공적 참조 자료들-100가지-




- 경험으로 얻은 성공적 행동들을 모은 작은 실천 방법입니다.


1: 학생들의 활동을 언제나 사진으로 찍어두십시오. 그리고 교회 게시판이나 해당 청소년 단체 게시판에 붙여두고 학생들이 재미있는 설명을 써 넣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2: 요즘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잡지를 구독하십시오.

3: 편지를 많이 활용하십시오. 생일카드나 개인적이면서도 분명한 내용이 있는 편지를 보내십시오. 정기적으로 엽서나 공지사항을 알리는 글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4: 학생들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설문조사를 잘 활용하십시오. 정기적으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십시오.

5: 지역 청소년 지도자 모임에 참여하십시오. 그런 모임이 없다면 만드십시오. 정기적으로 함께 만나 좋은 아이디어나 문제점을 함께 나누십시오.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6: 모임 중에 소란하거든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주의가 산만해지거든 즉시 파악하고 이야기하십시오.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7: 부모님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마십시오

8: 청소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응답 전화서비스번호를 하나 가지십시오. 공지사항을 알리거나 비상연락을 하는데도 좋으며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현재 준비중인 다음 프로그램을 알 수 있도록 해줍니다. 특히 부모님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될 수 있습니다.

9: 모임이 끝난 후 그들이 배운 것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오늘 배운 것은..."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거나 소그룹으로 토론을 해도 좋습니다.

10: 모이는 청소년들 수에 비해 너무 큰 방에서 모이지 마십시오. 수가 적거든 작은 방에서 모이는 것이 좋습니다.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항상 모임 장소가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도록 만드십시오.

11 1년을 마무리지을 때 학생들이 회지를 함께 만들도록 하라. 지난 활동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사진과 글을 실으면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게될 것이다.

12 스스로 일을 잘 하는 기준을 세우고 이를 성실히 지키라.

13 인원이 적을 경우 다른 청소년 단체나 모임과 연합하여 활동하라. 자료와 비용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교파가 다를지라도 초청하여 함께 활동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14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하라. 저절로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그렇게 해결되는 일은 없다.

15 비상시를 대비하여 연락망을 만들어두라. 10명의 학생에게 연락을 할 10명의 학생이 있다면 한꺼번에 100명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16 교회에 청소년을 위한 책을 소장해놓은 도서관이 없다면 만들어보라. 매달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아동이나 부모, 교사들을 위한 책도 함께마련하면 좋다.

17 청소년들이 교회 내에서 자신들을 후원해주길 바라는 어른을 뽑도록 해주라. 자신이 뽑혔다는 것을 알면 후원을 부탁하기 더 쉽다.

18 그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개최하는 활동이나 행사에 후원자나 도우미로 자원하라. 식사나 집회, 수학여행, 운동회 등 도움을 필요로하는 학교가 많다.

19 당신의 사역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나 후원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 훈련하고,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라.

20 일주일을 어떤 일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해보라.

21 교회나 모임 장소에 늘 일찍 나가 학생들이나 부모님이 도착하는 것을 마중하라. 모임을 마치고나서도 모두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마지막으로 떠나라.

22 당신이 지도하는 청소년들의 욕구과 흥미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그들을 지도하는 성인의 수준에 맞추지 말고.

23 일년 중 바쁜 시기를 준비할 때에는 이틀 정도 사무실에서 떠나 있는 것이 좋다.

24 그 지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라.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나라와 다른 점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전화할 수 있는 전화카드를 선물로 주라.

25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해보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며 아이들은 그런 색다른 프로그램을 즐길 것이다.

26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라. 추수는 인생을 끝마칠 때 하는 것이지 당신이 이끄는 모임을 끝마칠 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지 말라. 진정한 결과는 훨씬 뒤에 나타난다.

27 타지역 교회나 가까운 기독단체의 청소년 지도자를 초청하여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라.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28 학생들이 방과 후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오후 시간을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해보라.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는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 도움이 된다.

29 모든 것을 미리 점검하라. 한번도 본적이 없는 비디오를 틀거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강사를 초청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학생들을 실험용 모르모트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30 지도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님에 대해 알아두라. 이름만 부르지 말고 성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31 해마다 새로운 책을 몇 권 읽으라. 청소년 사역, 시간관리, 테크놀로지, 고전 분야에서 한 권씩, 그리고 인기있는 소설 두 권 정도를 기본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32 학생들을 청소년들만의 활동에 국한시키지 말고 교회 활동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 전교회 임원활동이나 회의에 참여할 수도 있고, 어린이부서나 어른들의 활동에 함께 하거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 밖에 교회 행사나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33 미소를 짓거나 큰 소리로 웃는데 인색하지 말라.

34 가정방문을 해보라. 방을 어떻게 꾸며놓았는지를 보면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5 청소년 모임과 활동을 소개하는 안내서나 엽서를 만들어 부모님, 새로 온 친구들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하라. 사진, 간략한 설명, 시간 장소 등을 넣으면 된다.

36 1년에 적어도 두 번씩 묵상하며 쉴 수 있는 시간(retreat)을 가지라. 이러한 하루가 한달 동안 4번의 주일을 보내는 것 만큼이나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37 학생들이 그들답게 유쾌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라. 그들은 성인이 아니다.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38 학생들이 적게 모였다는 이유로 모임을 취소하거나 연기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계획을 다소 변경할 수는 있지만 집으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나온 학생들이 나오지 않은 학생들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39 학생들이 즐겨듣는 음악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음악 채널에서 방송하는 인기있는 뮤직비디오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음악에 대해 긍정적인 면에서 토론하는 것도 좋다.

40 다른 교사 등과 함께 적십자 등지에서 하는 응급처치요령을 배워두는 것이 좋다.

41 불가피한 경우를 대비하여 후임자가 될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부적격자라고 생각이 되면 주저하지 말고 적절한 훈련을 받은 경험있는 후임자에게 학생들은 맡기라.

42 병원 내의 청소년 담당 목사, 또는 마약이나 알콜중독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사역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43 좋은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으라. 한꺼번에 사용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는 풍부한 자료들이 필요할 것이다.

44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공연하거나 촌극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갖가지 의상들을 모아두라.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런 의상부터 낡은 옷까지 다양하게 기증을 받으면 된다. 지역 벼룩시장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45 학생들에게 아주 바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말도록 하라. 그들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6 전체 학생을 앞에서 게임을 하는 등의 경우, 학생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지 말라.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 훌륭하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는 활동을 하라.

47 좋은 취미나 특기를 갖고 야외 활동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 악기를 배우거나 새로운 운동을 잘할 수 있도록 연습하거나 뭔가를 수집하는 취미활동을 시작하라.

48 자신이 잘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법도 알아야 한다.

49 갑작스런 경우를 대비하여 적어도 하나 이상의 프로그램을 준비해두라. 강사가 오지 않거나 상영할 비디오가 제 때 도착하지 않을 경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50 교회 내 성인들과 학생들이 자매결연을 맺어 정기적으로 연계된 학생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라.

51 좋아하는 노래가 찬양집에 없을 경우 OHP나 슬라이드로 가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라. 저작권이 있는 노래라면 먼저 허가를 받아야할 것이다.

52 학생들 중 약간 모자란 친구들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뛰어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관심을 기울여주라.

53 학생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도록 가끔 담임목사님을 초청하라. 학생들이 담임 목사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54 마치 운동선수의 코치처럼 목회를 하려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함께 일하는 청소년 지도자들에게 본을 보이라.

55 학생들의 활동을 부모님들에게 알리라. 학부모들을 위해 의문사항이나 평가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뉴스레터나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 좋다. 학부모들과 의견 교환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청소년 사역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56 함께 일하는 청소년 지도자들에게 해야할 일들을 자세하게 전달하라. 그들이 해야 할 목표가 무엇이고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해주라. 그들이 요청받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좋은 자료들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57 모든 모임과 활동을 확실하게 기획하도록 하라. 그러면 학생들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규율을 잡느라 애써야할 문제들이 줄어든다.

58 학생들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의견을 내놓는 회의를 갖게 하라. 우선 별다른 비판 없이 풍부한 아이디어들이 나오도록 한 후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평가를 한다.

59 절대로 전문적인 신학 용어나 진부한 문구를 사용하지 말라.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내용을 전달하라.

60 개인적으로나 학생들이 모여있을 경우나 언제든 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긍정해주라. 그래서 결국 그들 스스로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도록 만들라.

61 외모나, 체중, 성격 등에 뚜렷한 결점을 가진 학생이 있을 경우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학생을 도와주고 있으리라고 단정짓지 말라.

62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할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한 메시지로 전달하려면 구체적인 예가 필요하다.

63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먼저 고려해보지 않은 채 커리큘럼을 진행하지 말라. 커리큘럼 저자는 당신이 지도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모른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다.

64 양적인 성장에 얽매이지 말라. 규모가 커졌다고 성공한 것은 아니다. 건강하면 잘 자란다. 그러나 잘 자란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다.

65 사무실 개인 게시판에 가까운 친구나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오래된 엽서, 그밖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붙여 놓으라. 학생들은 그러한 것을 들여다 보길 좋아하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66 자신에 대해서나 주변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라.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것이 되고 좋게 생각하면 좋은 것이 된다.

67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안다고 했을 때 보다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일 것이다.

68 프로그램을 하기 전 항상 다른 그룹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과 겹치지는 않는지, 차량 운영은 수월한 지 등 미리 확인해 두라.

69 교사와 학생들이 지켜야할 규칙이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교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70 표면적인 상황에 대한 대책만 세우지 말고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설교를 하거나 야단을 치려고 하기보다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

71 일년에 한번 이상 청소년 사역자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72 할 수 없다거나 그렇게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식의 부정적인 조건을 만들지 말라.

73 언제나 자동차 트렁크에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라. 언제 축구공이나 원반던지기, 비치볼이 필요할 지 알 수 없다.

74 청소년들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여성후원자, 남성 후원자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도움이 된다.

75 모임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늘 간단한 먹을 것을 준비하라. 아이들은 이를 좋아하며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또 아이들이 좀 더 오래 머물며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76 지역에서 열리는 무료 영화상영 프로그램 등을 유익하게 활용하라.

77 파벌이 생기는 문제를 걱정하지 말라. 오히려 모두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도록 하라. 파벌을 깨려고 하면 보통 쓸데없이 에너지만 소모하고 정반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78 학생 기록부를 기록하라. 가족사항이나 개인적인 사항들, 생일, 사진, 상담이나 주의 깊게 살펴본 평가 등을 신빙성 있게 기록하라. 사역을 하는데 유익하며 후임자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79 교회를 개선하려면 당신 자신부터 시작하라.

80 은밀한 곳에서 반대 성(性)을 가진 학생과 상담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커피숍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소문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81 청소년 사역에 관한 기록을 남기라. 매주 어떤 청소년 그룹 활동을 했는지 기록하고 평가하라. 아이들과 만나거나 전화를 한 내용도 기록하면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생각을 잘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중요한 행사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82 상담을 하고 충고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야 한다. 청소년 사역자는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83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을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수련회에 참석시키라. 마음이 잘 맞는 팀을 이루도록 애쓰라.

84 지역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경기를 비디오 테잎으로 녹화하여 그 학교 학생들을 모두 초대하여 대형스크린으로 모두 함께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85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예배시간에 연주하도록 하라. 학생들이 자신감이나 지도력 등을 키울 수 있고 찬양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86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해 보라. 가능하면 교장 선생님이나 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당신이 하는 일을 소개하는 것도 좋다.

87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 그들의 이름도 모르면서 그들을 위해 사역할 수 없다.

88 친구들 앞에서 학생을 훈계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만나 일대일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89 수련회나 행사 광고를 절대로 그대로 믿지 말라. 예약하기 전에 직접 방문하여 질문을 해보고 융통성 있는 행사 진행 방법이나 추가 비용 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가능하면 식사도 미리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90 토론을 할 때 학생들이 내놓은 의견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 학생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91 가족이나 친구와의 시간이나 기독교 외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 개인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과감히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92 교회 임원들을 자주 만나 청소년 모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직접 알려주는 것이 좋다.

93 TV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라. 좋은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함께
토론하거나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하고 평가해 보라.

94 적어도 일년 정도 미리 청소년들의 활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새로 적어 넣을 수 있는 달력을 준비해두라.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모르면 가지도 못한다.

95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어라. 모든 일에 자신의 의견은 접어두고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96 학생들이 매년 한가지 이상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라. 이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건전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97 일년에 한 번 정도 드라마를 공연하라. 보다 낳은 학생들이 가진 달란트를 발휘할 기회가 되며 만족을 느낄 것이다.

98 소년원 등 지역 청소년 보호시설을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해보라. 가능하면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다. 예배를 드려주거나 상담 등의 도움을 줄 수 있다.

99 청소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야 한다. 가능하면 항상 학생들이 차를 고치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 등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라. 당신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라.

100 "청소년인 척" 하지 말라. 성인이면 성인답게 행동하라. 학생들이 좋아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담당 교사,교역자,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실제 사역 현장에서 성공적
--적용이 가능한 자료들이 되어 교회부흥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by 대마왕 | 2008/06/07 12:10 | daily | 트랙백 | 덧글(0)

실컴11

by 대마왕 | 2007/11/30 18:40 | 트랙백 | 덧글(0)

하버드 MBA 학생들의 목표성취 기술

하버드 MBA 학생들의 목표성취 기술

 

하버드 MBA과정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표 설정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재학시절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학생은 전체의 3%였고, 13%목표는 뚜렷했지만,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졸업 후 수입이다.

목표와 계획이 뚜렷했던 3%는 나머지 97%의 평균수입의 10배에 달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목표만 있던 13%는 나머지보다 평균 2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목표와 계획이, 같은 강의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도 표지판도 없이 낯선 세계를 여행하듯이 살아간다.

일에 파묻혀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삶은 늘 불만족스럽다.

미래는 언제나 막연하고 자신감은 이미 나를 떠난 지 오래이다.

IBM, 포드, 제록스, HP등을 담당했던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브레이언 트레이시는‘목표는 막연한 꿈이 아닌 기술’ 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성공하려면 앞에서 조사된 상위 3%의 방식을 따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전하는 목표 달성의 기술들여다보자.

1. 기한을 정하지 않은 목표는 총알 없는 총이다.

기한 없는 목표는 탁상공론이다.

기한이 없으면 일을 실행시켜주는 에너지도 발생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을 불발탄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분명한 기한을 정하라.

2. 독수리가 되고싶다면 독수리 떼와 함께 날아라. 늘 교류하는 ‘준거집단’의 선택이 목표달성을 좌우한다.

칠면조 무리에 섞여있으면서 독수리를 꿈꾸지 마라. 목표에 걸맞는 사람들과 교류하라.

3. 목표는 긍정문, 현재시제 1인칭 잠재의식은 긍정적인 명령처리와 현재시제에 잘 반응한다.

또한 목표는 개인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동기가 나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4. 목표는 간결해야한다.

목표달성을 이루려는 사람은 여기저기 총알을 퍼붓는 기관총 사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단 한번에 목표물을 날려버리는 저격병이 되어야 한다.

5. 성공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라. 육체는 신경 에너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마음속에 성공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의 중앙컴퓨터에 성공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6. 마무리 5%가 성공을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이 95%까지는 열심히 일하다 막판에 목표달성을 포기한다.

포기하는 것도 유혹이다.

마지막 5%가 남았을 때 다가오는 포기의 유혹을 이겨내라.

7. 잘못을 인정하라. 그래야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목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인정하지 않으면 행동도 할 수 없다.

8. 목표달성을 의한 대가를 두려워하지 마라. 성공을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성공한 다음 대가를 치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성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그때그때 대가를 치러야 움직이다.

Source : 매경인터넷 금융센터(http://money.mk.co.kr) ihappyi Wealth Manager 정지영

by 대마왕 | 2007/10/19 23:23 | daily | 트랙백 | 덧글(0)

대학원 생활에 대해 하고싶었던 말(김진수 교수님) about computer science

Computer Science/Engineering 연구

물리학, 화학,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은 신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진짜 신이 수소, 산소, 질소 등등의 각종 원소를 이용해서 물질을 만들게 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고 그것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할 뿐입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에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을 필요도 없고, 단지 발견과 경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업으로 삼고 있는 computer science 혹은 computer engineering 분야는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놓은 computer system을 학문의 대상으로 합니다. 따라서, 자연과학과는 본질적으로 학문의 성격이 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Computer science에서의 연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발견"을 하는 연구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알아내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위주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미 우스개소리로 말한 바 있지만, 결국 연구의 시작은 남이 한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논문을 하나 읽으면, 그 논문의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의 아이디어가 좋다고 설득을 했는지, 그리고 문제점이나 제한점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습관을 항상 들이기 바랍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논문을 읽어도 연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어에는 도움이 됨)


결국은 창의력 싸움

웅진 씽크빅 CF에서 "이젠 창의력이 경쟁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저도 창의력이 그렇게 중요한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요즘 들어서는 결국은 창의력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다른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았다면, 자신이 했다면 어찌 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창의력 있는 사람과 창의력 없는 사람이 드러납니다. 만일 몇몇 논문을 읽고,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모두 파먹어서 나는 별로 할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일단 자신의 창의력을 의심해 보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꾸준하게 새로운 논문들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창의력이 있고, 창의력이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창의력은 계속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는 훈련에 의해 충분히 그 역량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권장하고 싶은 방법은, 어떤 논문의 introduction만을 읽고, 혼자 생각해 보는 방법입니다. 논문의 introduction을 읽으면, 그 논문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background와 문제점, motivation 등이 나옵니다. 그럼, 그 부분에서 논문 읽는 것을 중지하고, 해당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라면 어떤 식으로 approach 하겠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또한,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실험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했겠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마치, 연구 topic이 주어졌을 때 본인이 그것에 대한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풀어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논문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봅니다. 비교를 하면 보통 세가지 경우 중의 하나입니다. 첫째, 자신의 생각이 너무 단순해서 논문의 related work에 나와있는 경우 - 그 정도로는 안된다는 뜻이죠. 둘째, 자신의 생각과 논문의 아이디어가 거의 비슷할 때 - 아쉽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셋째, 논문의 아이디어나 related work에 나와 있는 내용과 다를 때 - 새로운 논문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미 했을지도 모르니 관련 연구를 다시 자세히 조사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개의 경우 관련 연구를 조사해 보면, 누군가 이미 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혹시 아무도 자기가 생각한 것을 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결과가 좋게만 나온다면 새로운 논문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십중팔구,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아서 시도해 보았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경우가 또 대부분입니다. ㅠ.ㅠ 이 경우, 어떤 사람들은 결과가 좋지 않으니 더 해 볼 생각도 안하고 거기서 그냥 하던 일을 접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전부 날라가게 됩니다. 그 보다는, 무엇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던 결과와 차이가 나는지를 분석하고, 원래의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optimize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끔 제가 여러분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할 때에는, 저도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렵게 일을 해서 결과를 뽑으면 결과가 안 좋게 나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주저앉지 말고, 그 결과를 어떻게 하면 활용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두 번 생각해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정도로 해결이 될 것이라면 이미 누군가는 시도해 보았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나 깨나 밥먹을 때나 샤워할 때나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때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정 안되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더라도,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던지 논문으로 정리를 하기 바랍니다. 논문 내용이 아무리 해도 더 이상 안되더라..가 되더라도 말입니다.  


Discussion의 중요성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항상 처음에는 허황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허황되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되게 만드는 과정이 연구입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과 discussion을 하는 것입니다. Discussion을 하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연구에 중요한 도구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다 보면, 자신의 아이디어도 정리되고, 자신이 빼먹고 있었던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입장에서 공격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파악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의 discussion 상대가 되겠지만, 여러분끼리의 discussion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습니다. 간혹 보면, 이것은 나의 일이고, 저것은 쟤가 맡은 일이라서 서로 간섭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서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weekly reports를 공개적으로 이 곳 게시판에 올리게 하는 이유도 자신이 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실험에 대한 사전 고려

어떤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아지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밀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험 결과가 없이 단지 말로만 이것이 저렇게 좋아진다고 하는 것은 software engineering 같은 데서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 분야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입니다. (진짜 아이디어가 좋다면 특허는 낼 수 있습니다. 특허에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증명할 필요가 없으므로...)

결국, 적당한 실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허공에 대고 메아리치는 격입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초기부터 어떻게 실험을 해야 할지 미리미리 고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infrastructure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실제 implementation을 할 수 있겠는지, 아니면 필요한 simulator를 얻을 수 있는지, benchmark로는 무엇을 사용하면 되는지 등등에 대해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예전에 비해 연구 환경이 매우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OS나 architecture에 대해서 연구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OS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OS source code가 없으니 implement 해 볼 방법이 없었고, architecture에 관한 연구도 이와 사정이 비슷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Linux와 같이 source code가 가용한 OS를 이용할 수 있으니,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Linux를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지만, open source니 뭐니 그런 것 보다도, 일단 연구의 중요한 도구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Linux 상에서 무언가를 했다고 해도 그 사실만으로는 태클을 받지 않는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으니, 학교의 입장에서는 연구를 하는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Architecture에서도 요즘에는 SimpleScalar와 같은 좋은 시뮬레이터들이 많이 있어서 연구에 활용되고 있으니, 이제 실험을 못해서 논문을 쓰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기도 힘들어 졌습니다.

어쨌거나 요약하면, 적절한 실험을 통하여 검증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만을 일단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단지 장비나 실험 환경이 없어서 여러분의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될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검증할 수 없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는 여러분의 시간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졸업들 빨리 해야죠...


많은 사람의 관심이 되는 topic vs. 일부의 사람들만 관심있는 topic

연구 topic, 특히 박사학위 논문 topic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관심이 있는 topic입니다. 이것은 community도 작고, 관련된 컨퍼런스나 워크샵도 수가 작습니다. 일부의 사람들만 관심이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현실성이 없거나, 너무 미래지향적이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active하게 연구하고 있는 topic입니다. 이런 분야는 많은 사람들이 달라 붙어있기 때문에 논문도 많이 발표되고 굉장히 속도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경쟁도 그리 심하지 않고,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잘(!)만하면 비교적 쉽게 논문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논문을 쓴다고 해도 일부의 사람들만 인정을 할 뿐입니다. 반면, 후자의 분야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남이 한 발 앞서 할 수도 있고, 경쟁도 매우 심하지만, 일단 그런 경쟁을 뚫고 논문을 발표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관심도 갖고 국제적인 지명도도 얻게 됩니다.

두 가지 종류의 topic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지는, 개개인의 성향입니다. 저보고 추천하라고 하면, 저는 힘들지만 후자를 선택하라고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는 topic에서 일을 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과 때로는 좌절을 수반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큰 법입니다. 제가 앞서 중요한 conference 들을 언급하였는데, 그러한 conference에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후자의 일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능동적/공격적인 연구

능동적 연구라고 함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구를 해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뜻이고, 공격적인 연구라 함은 논문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능동적인 연구를 강조하는 이유가 교수가 논문지도 안하고 놀기 위함은 절대(!) 아닙니다. 석사건, 박사건, 졸업을 하는 것은 지도교수보다는 본인의 역량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도교수가 밥상을 차려줄 수는 있어도, 밥을 먹는 것은 본인입니다. 제가 석사 신입생들 면접할 때도 얘기를 했는데, 대학원은 제가 여러분을 귀찮게 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를 귀찮게 하는 곳입니다. 언제라도 어떤 문제에 대해 저와 얘기하고 싶다면 제게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서두...^^. 가끔 보면 지도교수가 옆에서 이거해 봐라, 저거해 봐라 하는 경우에는 왜 하는지도 모르고 별로 신도 나지 않은 채로 일을 하지만, 지도교수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서 스스로 연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졸업과 관련하여서는 귀찮게 하지 않을 작정이니 졸업하고 싶으면 스스로 알아서 하세요.

공격적으로 연구를 하라는 것은 좋은 논문 하나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간혹 보면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에 들어오면 박사 논문 topic을 찾아 헤매서 돌아다니고, 그 외의 일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봅니다. 큰 거 한 방을 찾는 거죠. 하지만, 논문도 써 본 사람이 잘 쓰는 법입니다. 실제 박사논문 topic을 잡아서 집중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작은 아이디어라도 논문으로 만들어 내어 보고, 영어 엉터리라고 reject도 당해 보고, accept 되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도 해 보고 할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몇 번 해 보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감도 잡히고, 실제 본 무대에서 뛸 때 도움이 됩니다. 야구 선수들도 처음에는 minor league에서 연습하다가 major league에서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은 아이디어라도 실험 결과를 뽑고, 논문으로 만들어서 좀 떨어지는 컨퍼런스나 워크샵에라도 발표하려는 노력을 하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박사 1-2년차때 석사논문 내용이나, 수행한 project, course term project에서 한 일들을 가지고 major/minor conference에 한 두 개의 논문을 발표해 보고, 박사 3년차 이후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topic에 대해서 연구하여 major conferences에 논문 2개 이상, 그리고 journal 논문 하나 이상 정도를 쓰고 졸업을 하면 좋겠습니다. 석사과정의 경우에도, 웬만한 conference에 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석사 논문으로 적당합니다. 석사 논문을 쓰면 그것을 정리해서 conference나 정보과학회 논문지에 내어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또 하나, 능동적/공격적인 연구와 관련하여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절대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다른 사람과 상의하고 일을 나누어서 하세요. 혼자서 논문 2개 쓰는 것보다, 둘이서 논문 4개 쓰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후배일 경우에는 후배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효과도 있게 되겠죠.

마지막으로, 대학원에 들어올 때는 순서대로 들어오지만, 졸업은 반드시 들어온 순서대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로는 선배를, 혹은 교수를 뛰어 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석사과정에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4학기를 채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3학기만에 조기졸업을 할 수도 있고, 이제 석박사 통합과정이라는 것도 생겼으니 필요하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논문의 first author

논문을 쓸 때 주의할 점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반드시 first author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First author는 기본적으로 해당 논문을 작성할 때 주도적으로 writing을 한 사람입니다. 즉, 아이디어를 A가 냈다고 하더라도, 논문을 B가 썼다면 B가 first author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못지 않게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논문화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디어내고, 실험 결과만 뽑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first author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논문의 first author가 되기 위해서는 그 논문을 실제로 본인이 작성해야 합니다.


연구는 타/이/밍

항상 computer systems에서도 resource management가 문제가 되는데, 여러분의 대학원 생활에도 자원 관리, 특히 여러분의 시간 관리가 중요합니다. 대학원, 특히 박사과정에서는 어리버리 하다 보면 시간이 금새 지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박사 1-2년차에는 랩일 하고, 코스웍 듣고 하다 보면 가고, 3년차는 뭔가 해 봐야지 하면서 보내고, 4년차가 되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하는데 박사논문 topic은 잘 안 잡히고, 5년차에 다행이 topic하나 잡아서 한 6개월 죽어라 일을 하고 간신히 졸업하면 다행... 인 것이 잘못하면 걷게 되는 여러분의 운명입니다.  

일단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빨리 졸업해야 되겠다는 motivation의 부재입니다. 그냥 사람들 좋고, 시간 여유 많고, 사회에 나가는 것도 두렵고, 그러다가 보면 대학원 생활에 익숙해 지고, 왜 대학원에 있는지도 모르고, 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게 됩니다. 국내 대학원에 있는 사람과 유학간 사람들을 비교해 볼 때, 대부분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performance가 떨어진다고들 합니다. 이것이 원래 부지런하고 자기 앞가림하는 사람들이 유학을 갔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저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대학원생들이 유학간 사람들에 비해 motivation과 긴장도가 떨어지고 열심히 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래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여러분이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저도 잘 아나, 대학원에 있는 동안 만이라도 일단은 연구에 우선 순위를 두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졸업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대학원에 있는 동안은 잠시 미뤄두세요. 그게 싫다고요? 그러면 열심히 연구해서 빨리 졸업하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것 실컷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매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연구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가끔 기분전환도 하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그래야 되겠죠. 따라서 결국은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데, 제가 볼때는 생산성과 집중력이 중요합니다.

연구는 타이밍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topic에 대해서 일을 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에게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내가 어리버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다른 사람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발표해 버리면 내가 들인 시간은 물거품이 됩니다. 가끔 어떤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저는 빨리 결과 뽑아서 논문으로 만들고 싶은데, 정작 그 일을 하는 학생은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하는 바람에 제 속만 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누가 먼저 발표할까봐 불안해 죽겠는데 말이죠. 따라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1년 내내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보다는, 6개월에 집중해서 끝내고 나머지 6개월을 탱자탱자 보내는 사람이 훨씬 더 낫습니다.  


학자적 양심

나중에 졸업 등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한순간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싶은 충동이나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인냥 슬쩍 빌려오는 등의 유혹을 받게 될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조!건! 절!대! 안 됩니다. 왜냐고요? 바로 학자적 양심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양심이 있듯이, 배운 사람에게는 학자적 양심이라는게 있습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죠.  

일전에 우연히 정보과학회 춘계 학술대회 논문집을 넘겨보다가, 우리 랩 학생이 말도 안 되는 논문을 낸 것을 보고 혼낸 적이 있습니다. 이미 웬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내용을, 심지어 예제 코드로도 많이 나오는 내용을 논문이랍시고 버젓이 쓴 것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보과학회 학술대회 논문집을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논문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그런 논문들이 심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 것도 문제이긴 합니다. 또한, 정보과학회 학술대회 논문의 경우에는 교수님들께서 일일이 신경을 쓰시지도 않고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논문을 실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KAIST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허접한 논문을 발표하면 여러분 논문 발표 실적에 한 줄 더 쓸 수는 있겠지만, KAIST나 여러분의 지도교수, 혹은 여러분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배울수록,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의 수준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KAIST의 특수성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은, 특히 KAIST 학생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져달라는 점입니다. KAIST는 다른 학교와는 달리 많은 부분을 정부의 지원, 그러니까 국민의 세금에 의존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여러분 한명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포함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세금을 내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을 믿고 지원해 준 국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연구하고 빨리 졸업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하면서 하루하루를 지세운다면, 제가 보기에는 공적자금 빼돌리는 악덕 기업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많은 KAIST 학생들이 자신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아니면 여기까지 온 것도 경쟁을 뚫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이만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되기까지 힘들었으니 이제 돈을 빼돌려도 된다는 것이 합리화되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이 KAIST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여러분이 받고 있는 혜택을 당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여러분이 지치거나 힘들 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여러분과 함께 KAIST에 들어오고 싶어 했고, 지금도 KAIST에서 공부하기를 꿈꾸면서 얼마나 많은 후배들이 공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것이 석사논문 주제가 되나요? (version 0.2 추가)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는 묻습니다. "제게 이러저러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것이 석사논문 주제로 적당할까요?" 라고요. 태어날 때 천한 사람, 귀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 저는 처음부터 석사논문으로 적당한 topic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topic이 석사논문으로 적당한 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그것을 주장하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그것이 왜 중요하고, 어떤 점이 나아지며, 다른 사람이 한 일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논문 committee에 있는 교수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학위논문 심사를 보통 디펜스(defense)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이 한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득시키고 지켜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논문을 디펜스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discussion 입니다. 혼자서 생각하다보면 한쪽으로만 생각이 흐르는 경향이 있어서 중요한 것을 못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백그라운드가 다른 여러 사람에게 자기가 한 일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하다 보면,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설명해 주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기도 합니다. 또, 얘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여러가지를 물고 늘어지면서 시비를 걸게 되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 미리 대답을 생각해 보고 하면 실제 논문심사시에도 훨씬 여유가 있게 됩니다. 결국 논문심사를 위해 여러분이 준비해야 할 것은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저런 질문에는 저렇게 대답하고.. 등을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하는 것인데, 당연히 예상문제를 많이 풀어보고 들어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discussion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보통 어떤 논문에 대해서 눈여겨 보는 것은,

1. 어떤 환경 혹은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는가?
2. 가정하고 있는 환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
3. 그 문제가 왜 중요한 문제인가?
4. 문제 해결을 위한 본인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5.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기존에 한 일은 무엇인가?
6. 다른 사람들이 한 일과 본인이 한 일이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잘 비교, 분석되었는가?
7. 혹시 나빠지는 점은 없는가?

등등입니다. 위의 물음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으면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 석사논문의 수준은 웬만한 conference에 accept될 수 있는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바꿔말하면, 여러분이 작성하는 석사논문이 웬만한 conference의 심사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미나 참석 (version 0.2 추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미나 참석입니다. 보통 대학원 연구실 배정을 받고 나면 언제부터 본인에게 연구분야가 있었다고 자기 연구분야가 아니면 세미나에 흥미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고, 그런 기회가 아니라면 다른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조차 모르게 되니 가급적 학과/학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는 시간을 내어 참석하기 바랍니다. 그 시간에 여러분이 논문을 하나 읽는 것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서 잘 정리해서 발표해 주는 세미나를 듣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전산학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approach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는지를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쓰는 방법을 내 분야에 적용시켰을 때 매우 효과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다른 분야의 세미나라 하더라도 세미나를 들으면서 자유롭게 내가 알고 있는 분야에 비슷한 문제는 없는지 등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용을 모르더라도 최소한 발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혹은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서라도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으니 세미나 참석은 중요합니다. 같은 이유로 대학원 때 수업도 본인의 연구 분야에 관련된 부분만 집중해서 듣지 말고, 다른 분야의 과목들을 듣는 것을 권장합니다.  

흔히, 박사학위의 기본 요건 중의 하나가 T자형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산학 전 분야에 대해서 breadth와 자기 분야에서의 depth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보통 자격고사(qualifying exam)를 통해 breadth를 테스트 하고, depth는 박사학위논문심사에서 따지게 됩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자격고사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 좀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뭏든 둘 다 중요하니 자기 분야의 depth만 고집할 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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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조금 훈계조로 흐른 부분도 없지 않고, 일부는 몇몇 사람에게 얘기한 적도 있는데....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 것이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또 다른 생각이 나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참고할 만한 링크입니다.


Useful Links on Graduate Studies, Research, and Technical Communication

by 대마왕 | 2007/10/13 23:22 | 트랙백 | 덧글(1)

인터콥, '아프칸 납치 사건은 사단의 도전?

  '아프간 납치 사건은 사단의 도전?' 
                      최바울 선교사, 'GMNnews' 사설서 주장…

                      '신속한 지구촌 복음화 위해 나아가야' 
  
  이 기사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벌어진 직후 작성됐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납치된 한국인 인질들의 상황에 안 좋을 수 있다는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내렸습니다. 한국인 인질의 석방이 확정된 보도를 접하고, 다시 올립니다. - 편집자 주

                                                            

   인터콥의 최바울 선교사가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청년 23명 납치 사건은 영적으로 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사단의 도전이라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최 선교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 사건이 발생 직후인 7월 21일 'GMNnews'에 올린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최 선교사는 '아프가니스탄 단기사역팀 피랍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란 글에서 "이번 사건은 영적으로 보면 분명 한국교회에 대한 사단의 도전이다"며 "한국교회는 이러한 영적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오히려 전심으로 헌신하며 신속한 지구촌 복음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구촌복음화를 위해) 지혜롭게 해야 한다"며 "그러나 그 지혜가 십자가와 십자가 정신을 거부하는 것이면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교회를 죽이는 거짓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최 선교사는 한국인을 처음으로 납치한 세력은 탈레반이 아니라, 현지 무장 세력이라고 했다. 탈레반은 이들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 선교사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몇 가지 오해가 있다며, 해명을 했다.


   그는 일부에서 위험한 나라에 선교 활동을 하러 떠난 '정신없는 기독교인'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했다. 최 선교사는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 직후, 많은 서구 NGO요원과 기독교 단체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나라에서 봉사 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망각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의 봉사 활동이 이슬람을 자극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이를 한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무슬림을 자극하는 것은 창조주 신을 믿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인터넷 댓글에서 기독교인을 비난하는 무신론자들이라는 게 최 선교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슬람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고 말하면, 대부분 반가워한다고 전했다.


   최 선교사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민 해외여행규제법을 거론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법은 종군기자 및 인도주의적 활동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특정 위험 국가 여향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런 법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며, 한심한 노릇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세속 정부는 기독교 활동을 제한하거나 법적 정치적 핍박은 늘 있어왔다며, 그때마다 복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주님의 제자에 의해 세계 선교는 이루어져 왔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만약 정부가 인도주의적 활동에서 해외 기독교 봉사 활동을 배제하거나 기독교의 활동을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범주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탄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초대 교회의 사역 기조가 회복되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인터콥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 행진 축제를 계획하다, 한국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만류해, 행사를 취소한 바 있다.


   다음은 글 전문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작성자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


19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단기 봉사 활동에 나섰던 분당 샘물교회 단기팀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전세버스로 이동하다가 아프간 무장 세력에 의해 졸지에 납치되었다.


이후 이 피랍사건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경비를 마련하고 휴가를 이용하여 아프간 사람들을 섬기며 고통 받는 영혼들과 아픔을 나누며 섬기려고 떠난 사람들이 현지인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되고 또 이슬람 강경 탈레반 세력에 의해 정치적 도구로 활용당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사건이 또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한 바탕 폭풍우가 지나가듯 처리하고 지나가기보다는 보다 근본적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일반 언론뿐만 아니라 일부 기독교인들까지도 샘물교회 단기 팀을 위험한 나라에 선교활동을 위해 떠난 '정신없는 기독교인'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동란 시기에 전쟁과 전쟁직후 남노당의 활동으로 극심한 치안 부재상태에 있던 한국에 수많은 서구 NGO 요원들과 서구 기독교단체들이 전쟁의 고통과 가난 가운데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봉사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의 봉사활동이 이슬람을 자극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주장이 적지 않다. 한심한 주장이다. 이슬람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다. 둘째가 무속신앙 소유자나 불교신자들이다. 무슬림들은 창조주 신에 대한 신앙을 부인한 자들을 혐오한다. 무슬림들을 자극하는 것은 창조주 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인터넷 댓글에서 기독교인을 비난하는 무신론자들이다. 만약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거나 "나는 부처를 믿는다고" 말했다가는 거의 "돼지" 취급을 하는 것이 무슬림들이다. 이슬람에 대한 무지가 극히 상식적인(?) 오류를 낳게 하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고 말하면 대부분이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곧 쿠란 혹은 이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들은 진지하게 대화하며 사대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상대 자체를 거부한다. 그리고 혐오하는 표정을 짓는다.


셋째, 제한지역에서 적극적인 기독교인 단기선교, 봉사 활동이 장기적 선교사들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면 그러할 수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사역하는 장기선교사들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단기선교로 인한 문제는 단기선교, 봉사 활동 '운영'을 전문적 및 전략적으로 하지 못한 결과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장기 선교사들은 현지 사역을 잘할 수 있으나 단기선교운영에는 매우 미숙한 것이 현재 한국 선교계의 형편이다 장기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글로벌 시대에 사용하시는 단기선교운동을 비난하고 제어하는 오류를 범하기보다는 차리라 단기선교 운영을 배우고 단기선교운영 전문가가 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한국정부는 최근 국민 해외여행규제법을 마련하여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법에 의하면 '종군기자' 및 '인도주의적 차원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특정 위험국가 여행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법이 7월 23일 발효되는데도 한국교계는 감각이 없다. 선교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 가운데 이법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사는 순교를 각오하는 십자가의 희생적 헌신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물론 시대마다 상황마다 '위험'이나 '핍박'의 형태는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속정부에 의한 기독교활동 제한이나 법적, 정치적 핍박은 늘 있어왔다. 그때마다 복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 세계선교는 이루어져왔다. 중국 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요 한국교회의 역사-일제 시대 등-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주의적 활동' 범주에 당연히 기독교 선교, 봉사 활동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이 국제규범이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인도주의적 활동'에서 해외 기독교 봉사 활동을 배제시키려 하거나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범주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탄압이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이유에서도 국가는 종교활동의 통제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 과거에도 기독교인들은 포화가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부상자를 돌보고 전쟁고아와 난민들을 추스르며 고통 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복음을 전파해 왔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이번 2007년을 1907again으로 기념하며 올해를 한국교회 선교부흥의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10만 명의 선교사를 최전방 지역에 보낸다는 비전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6월에는 전국적으로 도시들마다 연합집회를 하였다. 이러한 헌신의 열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영적으로 보면 분명 한국교회에 대한 사단의 도전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영적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오히려 전심으로 헌신하며 신속한 지구촌복음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혜롭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혜가 "십자가"와 십자가 정신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교회를 죽이는 거짓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초대 교회의 사역적 기조가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 내에 지혜롭다고 하는 분들이 조선 땅에서 제대로 복음 한번 전해보지 못하고 대동 강변에서 순교한 영국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무모하고 어리석은 개죽음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과 교회사는 강력하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십자가 없이 부활도 없고 십자가 없이 하늘의 영광도 없다. (2007. 8. 30. 뉴스앤조이 / 이승규)

 

 

         아시아의 사도 


                                      정선기 장로 (산성교회.시인)

 
   “이렇게 하나 둘 죽어 가는데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아프간으로 날 보내 주세요…" 아프가니스탄 선교팀 피랍자 가족들은 울부짖고 있다.  “아프간으로 가는 비자, 특급으로 내줄 수 없나요. 세계 방방곡곡에 가서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싶어요. 아프간 대통령도 만나고, 미국 대통령도 만나고….” 딸을 아프간에 보낸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 링거주사를 맞으며 피랍자 석방을 눈물로 호소했다. 딸이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갔으니, 신(神)이라도 있으면 도와주겠지, 하며 버티던 모정(母情)은 인질 1명이 추가로 살해당했다는 비보에 마비증세를 일으켰다.


   피를 말리는 고통과 불안에 떨며 울부짖는 피랍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과 전 세계인이 손에 땀을 쥐고 초조하게 석방을 기다리고 있다.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 씨까지 희생당해 남은 21명조차 살아 돌아 올 수 있을지 희망이 사그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닥 희망인 정부의 협상도 갈팡질팡이다.


   상황이 불길하게 돌아가자 가족들과 정부, 교회까지도 “아프간에 간 목적은 선교가 아니라 봉사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테러집단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충정에는 이해가 간다. 특히 피랍자 가족들 중에는 “샘물교회서 단체로 갔지만 누가 혼자서 선뜻 그곳에 가 봉사할 수 있겠냐”며 “비록 교회 이름을 달고 갔지만 순수한 봉사활동이었다”고 강변했다. 또 어느 피랍자 아버지는 “제가 딸에게 ‘전도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딸이 웃으면서 ‘아빠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전도야. 그냥 봉사하러 가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정말 순수한 봉사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슬람의 반기독교 정서에 기름을 붓는 언동은 일절 삼가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할 것이다. 피랍자 가족들이 애써 ‘선교’를 부인하고 ‘봉사’를 강조하는 것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탈레반의 방자한 심기를 건드려 득 될 것이 없다. 더 이상의 희생자 없이 전원 살아서 돌아오게 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선교가 아니라 봉사’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계 목회자 7명이 샘물교회 봉사단의 아프간 피랍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자성과 선교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무슨 의도인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이들 목회자들은 “혹시 우리 선교의 내용과 방향에 잘못은 없었는지를 반성하며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다”고 했다. 선한 동기와 순수한 열정이 모든 방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라든가, 현지인 정서를 존중해야한다 라든가, ‘단기 선교’가 아닌 ‘단기 봉사’란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등은 선교를 중단하라는 소리나 다를 게 없다.


   복음전파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이다. 내용과 방향은 200여 년 전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 칼춤에 목이 떨어져 나간 그 내용과 방법이며, 그들에게서 배운 대로 우리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의 각오로 유언장을 써놓고 오지로, 산간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조선의 쇄국정책은 탈레반보다도 더 악랄하게 기독교를 탄압했다. 현지인의 정서를 존중하려거든 차라리 집에서 애나 보는 것이 편할 것이다. 더구나 ‘단기선교’ 대신 ‘단기봉사’라는 표현을 쓰라는 데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때와 장소에 따라 숨길 것은 숨기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는 지혜라든가, 보다 현명한 방법이 요구된다는 것쯤은 모를 사람이 없다. 죽음이 두려워, 훼방이 귀찮아, 비난이 싫어서 복음의 모습을 감추고 덮는다면 선교일 수 없다.


   아프간에 간 선교팀은 티 나게 외고 펴지 않았다. 이미 그곳에 갔던 수많은 선교팀들이 이슬람 국가의 정서를 최대한 감안했으며, 봉사를 기치로 내세웠다. 그 정도의 선교전략도 없이 무턱대고 위험한 이슬람 지역에 들어간 바보들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선교팀을 나무랄 게재가 아닌 것이다. 무지막지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표적이 되었다는, 불행하게도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데 비극이 있다. 


   복음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는 곳에는 그 어디나 고통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탈레반은 기독교 선교팀을 방치할 단체가 아니다. 탈레반은 오래 전부터 기독교를 상대로 지하드(聖戰)을 외치며 종교전쟁을 벌이는 이슬람 무장단체다. 이들을 선교한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며, 마지막 복음이 전파될 땅 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프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슬람 국가는 여리고성과 같이 마지막 때 함락되어야 할 이방지역이다. 이들 지역을 향해 불나비처럼 뛰어드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 피를 흘렸듯이, 우리 민족이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이슬람을 향해 나아가 피를 흘려야 하는 선교사명을 띠고 있다. 하나님이 마지막 세대에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해 기독교 역사가  200년도 안 된 우리나라를 특별히 지명하여 세우고, ‘아시아의 사도(使徒)’라 명명하신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세상과는 타협이 되지 않는 딜레마,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왜 기독교는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싫다는 나라, 귀찮다는 사람에게 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교를 해야 하는지, 변명하고 이해시킬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가라하시면 어디든지 예수의 이름, 선교의 명패를 달고 가야 한다.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무슨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차후의 문제다. 오지 말라고 가로막는 그 나라, 죽음이 기다리는 그 나라에 가서, 이 여름 휴가철에 비지땀을 흘리며 선교하는 이유란 ‘예수의 이름’ 그 하나뿐이다. 
   

   탈레반은 타협이 힘든 극단주의자들이다. 아프간에서 2006년에 자살폭탄테러가 118건 일어났는데, 모두 탈레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끔찍한 사건들이었다. 그들은 종교이념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선교하러 온 것에 대해 충분히 반감을 가질만하다. 이번 인질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난감한 것도 탈레반의 이념이 공허하여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격분자들의 구미를 맞추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즉생(死卽生)’의 순교정신을 가질 때만이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 지나치게 저자세로 구명(求命)에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약점이 잡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2007. 8. 13. 교회복음신문)

 

 


                     그들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갔는가   
               선교에 무슨 반성을 하란 말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선교를 하다 탈레반에 붙잡혀 죽음의 공포 속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샘물교회 23명의 선교팀(이 중 2명은 이미 피살)을 두고 세상에서는 말들이 많다. 심지어 교계에서까지 선교를 반성하느니, 회개하느니 하는 허튼소리를 하는,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의 나약한 소리가 들린다. 선교에 반성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또 회개는 뭐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소리를 내지르는 목회자와 지도자들이야말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선교의 방법론을 재점검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그런 소리는 우리끼리 조용히 논의할 성질의 것이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대한 시점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왜, 그들은 죽음의 땅인 그곳에 갔는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거기 간 것은 신앙의 비전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비전, 곧 선교 정신이 없다면 시체나 다름없다. 사지(死地)에 목숨을 걸고 겁 없이 들어간 그들은 죽든지, 살든지 오로지 복음전파의 일념(一念) 뿐이었으며, 그들의 선교비전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선교


   하나님의 선교비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일일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이 시대 교회는 어떤 고난과 시련을 딛고서라도 하나님 나라 확장에 몸을 던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환영하는 곳에만 가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손가락질 하고, 욕하고, 죽이려는 자들을 향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용감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군사다.


   아프간의 선교팀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출국 전에 유언장(?)을 써놓고 갈 정도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선교에 임했던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자는 죽는 것이 두려울 것이 없다. 이슬람의 나라 아프간, 극단주의자들인 탈레반이 눈을 부라리고 날뛰는 그 나라에 가면서 위험을 예지치 않았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면 한심한 사람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와 지도자들에게 있다. 선교에는 반성이 있을 수 없다. 주 예수의 복음을 들고 무작정 땅 끝까지 나아가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여기는 안전하니까 가고, 저기는 위험하니까 가지 않는 그런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사나 죽으나 주님 뜻대로 복음 들고 나아가는 것이 선교다.


   분쟁지역 선교 더욱 확대해야


   국제선교활동 조직인 ‘개척자들'의 송강호 간사가 “분쟁 지역으로의 선교는 더 확대해야 한다"는 논지(論旨)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송 씨는 아무리 위험해도 분쟁 지역으로의 선교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전쟁과 분쟁이 있는 위험한 곳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 피스메이커들을 파견하기를 원한다"며, “원래부터 선교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 했다. 또 그는 “분쟁 지역이 사람들이 위험 속에서 가장 두려워 떨고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분쟁이 일어나면 자신이 개척한 교회와 양들을 남겨둔 채 자신의 가족만을 데리고 선교지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가 다시 안전해지면 돌아가는 선교사들이 문제"라며 “분쟁지역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정부가 반대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의 선교를 접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의 막말은 사탄의 짓


   세상 사람들은 선교팀을 향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죽어야 한다'고 막말을 해댄다. 심지어 온갖 욕지거리를 하는 악마적 반기독교인들이 등장하여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에 가서 선교하는 머저리들이 어디 있느냐"며 기독교 전체를 매도하고 성토하며 기세등등하다. “기독교만 종교이고,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란 말이냐?"며 기독교를 몰염치한 종교로 매도하는 자들도 있다. 무슬림에게도 예수를 전파해야 한다고 믿는 종교적 배타주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인은 새로운 곳에 가면 식당을 열고, 일본인은 공장을 짓고, 한국인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인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로 세계복음화에 앞장선 민족이다. 자나 깨나 전도와 선교를 생각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업신여김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인의 희생과 봉사 정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며, 신앙의 생활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기독교 지도자들이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전도하기 전에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보듬고 살피는 낮아짐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복음전파의 땅 끝은 이슬람 지역


   이슬람은 ‘땅 끝까지 선교'의 마지막 남은 집단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환영할 리 없다. 그들을 향해 예수 복음을 부르짖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한 일을 감당하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이다.


   우리나라는 선교 초기 선교사들을 한강변에 잡아다 칼춤을 추며 목을 잘랐다. 무수한 선교사들이 몰래 들어와 복음을 전파하다가 이국땅에서 순교했다. 피를 흘린 그들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다. 우리는 그 빚을 갚기 위해 목숨 걸고 선교해야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죽는 것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 선교는 피를 요구한다.


   한국교회는 이번 아프간 사건을 두고 반성이니, 회개니 하는 힘 빠지는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순교신앙으로 선교의 횃불을 드높이, 더 넓게 들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평양대부흥운동 100년의 해에 진정한 회개와 자복을 통한 선교의 관문을 뚫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프간 사태 우연 아닌 하나님의 계획


   아프간 사태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 국가를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섭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독교인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위험이 닥치고, 시련이 올 때마다 더욱 연합하고 하나 되어 굳건한 신앙을 세상에 드러내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아프간에 간 선교팀이 살아서 돌아오도록 함께 기도할 것이며, 이 사건으로 인해 주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게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신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용감한 군병들이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서 돌아오는 주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한다. (2007. 8. 14. 교회복음신문 / 사설)

 

 

           샘물교회, 위기를 교회본질의 회복으로 삼아.  
 
   지난 7월 19일, 박은조 목사가 시무하는 샘물교회는 그야말로 큰 위기를 만났다. 단기선교봉사 활동을 떠난 2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창졸지간에 가장 지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중의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고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니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과 교회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위험은 또 다른 위험을 부르는 법. 피랍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교회 바깥의 세상 사람들은 선량한 보통 시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을 향하여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정부도 가지 말라는 위험한 곳에는 왜 갔느냐?’, '비행기를 보내도 왜 오지 않았느냐?', ‘유서를 쓰고 갔다니 죽어도 좋은 것 아니냐?’는 등 어디서 들은 풍문을 조합하여 전혀 맞지도 않은, 그러면서 매정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겼다.

 
   그러는 중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가 살해당한 소식이 잇달아 날아들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지는 듯 했으나 정부 대표단이 대면 협상에 나서자 ‘정부가 왜 나서냐?’,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그들을 살리려느냐?’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극단적인 소리를 하는 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반기독교시민운동’이니 ‘한국반종교클럽’이니 하는 역사가 제법 오래된 4개의 반기독단체들이 그들의 ID로 집중적인 공세를 펴고 있었다. 그들은 호시탐탐 교회에 대한 공격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샘물교회는 98년 11월 교회를 설립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형편에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쏟아지는 관심과 간섭, 참견을 받아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언론사의 기자, 카메라가 상주하기 시작하고 절반 이상 불신자들인 피랍자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돌아보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샘물교회는 이 위기의 때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담임 박은조 목사 자신도 교회의 잠재력에 놀랐다고 말한다. ‘교회는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다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노라’고도 했다. 그래서 혼자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끈히 견뎌내고 있었다.


   매일 새벽, 오전 11시, 밤 8시, 그리고 밤 11시에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들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 밤을 깨우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이었다. 분당에 자리 잡은 샘물교회는 그렇게 기도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가 지역따라 무슨 특별한 체질을 갖는 것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한 달이나 지속되면서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저녁 8시만 되면 7~800명의 성도들이 그냥 교회로 나온다. 지난 수요일 기도회, 찬양과 기도가 어우러지고 성도들은 말씀에 잠겨든다. 기도의 통곡소리가 예배당을 울린다. 수요기도회가 마친 후 양미희 사모는 철야파들과 함께 밤을 교회에서 지내고 새벽에 고3 아들이 잠들어 있는 집으로 향한다.

 
   박은조 목사는 밤 11시면 당회를 열어 하루하루의 상황을 나누고 집으로 들어가 새벽에 나온다. 아내조차 남편의 얼굴을 볼 시간이 제대로 없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교파적으로 관심 있는 이웃교회의 목사들이 교인들과 함께 기도회에 참여한다.

 
   그러다가 아예 뜻을 함께 하는 목사들을 설교자로 초빙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메시지가 들려지고 기도에 몰입하면서 성도들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매일 피랍자 가족을 비롯해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하루 두 끼씩 식사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권사들이 앞장서 즐겁게 감당하고 있다. 김경자, 김지나 두 사람의 돌아오는 경비에 정부 동행자의 비행기 삯까지 교회가 감당해야 했지만 각지에서 사랑의 물질이 답지하여 감사가 넘친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이제 아프간에 선교사 파송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일본인 당신들이 나서주어야 할 것 같다.’ 이동원 목사가 최근 일본의 한 집회에서 그렇게 말했더니 200명의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아프간으로 가겠다고 헌신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미국의 한국교포사이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복음을 위하여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헛되이 버려질 수가 없다. 무례한 사람들 앞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스도인들만이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이들은 23명의 인질이 피랍된 것은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경고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무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어지는 것이 교회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교회들이 회개의 기도를 했던가 아니면 복음이 승리하기를 기도했던가? 도대체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이 불쌍해서 도움의 손실을 들고 봉사를 갔던 저들이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었으며 샘물교회가 그 일로 회개하여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회개하여야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719 샘물교회 봉사단 사건’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모습을 보인 한국교회로 하여금 헌신과 섬김, 사랑과 봉사, 선교와 교회의 본질을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샘물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교회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 진정 기독교 부흥운동이 아니겠는가? (2007. 8. 26. 코람데오닷컴)

 

 

 

              아프가니스탄 이후를 생각하자
              단기선교,중요하지만 방법에 있어 대수술 불가피
    
                                      박태수 선교사(CCC 국제본부에서 개척선교 책임자)

 
   4년전 일이다. 우물이 없어 온 마을이 위기에 처했다며 아프가니스탄의 지역 어른이 나를 찾아 왔었다. 그를 따라 길도 없고 산이 험하여 맨몸으로 가기도 버거운 길을 한나절을 쫒아갔다. 산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 동네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만났다. 전날 지뢰를 밟고 사경을 헤메는데도 치료할 병원도, 약도 없어 죽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별도리가 없었다. 등에 엎고 우리가 머무는 곳까지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말렸다.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불과 반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 품에서 죽었다. 그날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 힘이 닿는 한 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그런데 지뢰밟고 죽어간 그 아이가 살던 마을 인근에서 우리 형제와 자매들이 인질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 너무 착하고 마음이 고와 나를 감동시켰던 그 사람들이 전세계가 치를 떠는 살인을 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 탈레반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런 일을 벌여서는 안된다. 무조건 인질을 풀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주었는지는 그들이 더 잘 안다. 그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지 어떤 인간도 손을 대서는 안된다. 무슨 정치적인, 종교적인 명분을 갖다 댄다고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이세상의 어떤 것보다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슬람의 율법에도 어긋난다.


   한국의 일부 몰상식한 네티즌들은 '공격적인 선교'를 한다느니,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무지막지한 행동들'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막말을 쏟아 내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나는 막내아들이 두살이 되던해에 온 식구를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만났었고, 설사와 풍토병으로 견딜수 없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먹을 것이 없어 한여름 내내 딱딱한 '난(현지인들의 주식인 빵의 종류)'으로 버티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물도 파주었고, 집도 수리해 주었고, 식량도 나누어 주었다. 다 부서진 교사를 수리하여 그곳에서 교육지원도 했고, 간간이 들어오는 의사팀들과 의료봉사도 했다. 환경은 세상에서 가장 열악했지만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선교를 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준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겠다고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현지의 모든 선교사들은 이보다 더많은 고생과 수고를 하며 선교를 한다.


   지금 우리는 이번 사태의 잘잘못을 따질때가 아니다. 모두가 합심하여 기도하고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짧은 선교 역사속에서도 이렇게 부흥하고 성장한 한국교회가 해야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세상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난에 교회가 속아서는 안된다. 세상은 예수님 당시부터 선교를 반대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을 핍박했다. 교회가 선교를 포기하는 순간 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선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존재의미 자체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위험한 지역에서의 선교를 중지하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선교는 지역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이 선교의 목표이며 조건이다. 그들이 사는 곳이 위험하고 살기 어려운 곳이라도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 가는 것이 선교이다.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위험한 지역에서 우리는 선교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교회가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안전하고, 저렴하고, 과시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선교는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선교는 아닐 것이다. 


   단기선교는 선교전략상 매우 중요한 자원들이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단기선교가 유행이 되었다. 단기선교가 선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단기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부흥도 안된다는 뼈있는 농담을 하는 목회자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단기선교는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굳게하는 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렸다. 선교 전략은 말할것도 없고 선교지 사정을 고려치 않는 보내는 교회 중심의 단기선교를 해 왔다. 이제는 단기선교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교회가 선교를 전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 단체와 협력하여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선교단체의 역할까지 다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목회의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선교의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우리가 모든 것을 하겠다'는 사고도 버려야 한다.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처럼 교회와 선교단체, 선교사, 현지인 지도자에게 주신 각자의 역할과 특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단체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이번 기회에 고려해 볼 일이다. 전문적인 선교단체는 열정만 있는 단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믿음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선교를 하는 단체를 말한다. 일부 지도자들의 열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단체가 많다. 그런 단체는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성을 상실한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맞게 선교를 하려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 으로만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정작 '지혜'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한국 선교단체들은 국제선교단체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배우기를 권한다. 그들이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하고 우리만의 독특한 장점을 효율적으로 살려낸다면 이 시대의 가장 귀한 선교 자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CCC 국제본부에서 유일한 한인 전임사역자로 사역하면서 많은 면에서 도전을 받는다. CCC 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단체로서 64만명 이상의 사역자가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고, 미전도종족 선교, 군인선교, 가정사역, 청소년 사역, 정부고위관리 사역등150개 가량의 전문 사역이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사역자들과 전세계 네트워크로부터 다양한 정보가 국제본부로 들어온다.


   또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본부 전략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다양한 영역의 세계적 이슈와 정보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현장으로 되돌려 보낸다. 그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는 기도와 믿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선교 사역을 추진해 나간다. 이런 유기적인 관계로 인해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하고 사소한 자원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과 위기관리팀은 거미줄처럼 전세계에 연결되어 있어 사역자 보호에 집중하고 있고, 단기선교와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긴급구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현대 정보과학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교를 하는 것이다.  


   이런 선교적 전문성을 교회들에게도 제공하여 교회가 효과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회는 이런 전문성과 투명성을 신뢰하고 재정 자원, 인적 자원을 과감하게 투자한다. 교회와 선교단체가 긴밀한 협력 관계속에서 선교함으로 세계적인 선교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 선교도 이런 수준으로 올라와야 한다. (2007. 8. 29. US아멘넷)

 

 

 

           ▲ 강승삼 목사는 한국교회 선교가 공격적이고 과시적이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왼쪽이 강승삼 목사. ⓒ뉴스앤조이 이승규  


          "'공격적 선교'라는 말, 동의하지 않는다" 
              KWMA 강승삼 회장…'기독교 비하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 
   
   "나는 공격적.과시적 선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 어떻게 공격적이고 과시적입니까".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교회의 공격적.과시적 선교 행태를 반성할 생각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승삼 목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 회장)의 답이다. 강 목사는  기자들을 향해 억울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그럼 공격적.과시적 선교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오지로 뛰어드는 한국교회를 향해, 공격적․과시적 선교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진정한 변화의 모습이 없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19명을 모두 석방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8월 30일 현재까지 12명이 석방됐다. 한국교회는 후속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사태가 진행되는 40여 일 동안 교회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보여준 공격적․과시적 선교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아침 회의만 봤을 때는 변화의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인다. 강 목사는 공격적․과시적 선교라는 단어에 '발끈'했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다.


   다시 물었다.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하고, 개종을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무조건 교회부터 세우고 보자는 일 등이 공격적․과시적 선교가 아니냐'고. 강승삼 목사의 답이다. "기독교인이 예배를 드리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모습을 공격적이라고 한다면, 마땅치 않다".

    
   강 목사는 이날 가칭 '선교 위기관리 기구'를 설립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기관리 강화 능력을 한국교회가 스스로 키우겠다는 의지다. 물론 지금도 각 선교단체에는 선교사를 위한 위기관리 지침이 있다. 지난 2004년 선교사 위기관리 지침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정작 사태가 터지자,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강 목사는 이에 대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단기 봉사팀은 선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설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정부에서도 사태 해결을 위해 각 선교단체가 개입하는 일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세.교권 확장 위한 선교가 바로 공격적 선교다'


   오세택 목사(두레교회)는 "정말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교회가 철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 목사는 "현재 우리의 선교는 철저하게 교세와 교권을 확장하기 위한 선교다"며 "바로 이것이 공격적․과시적 선교다"고 했다.


   그는 "한국 선교사가 나가 있는 지도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대도시 지역에 모여 있다"며 "이들끼리도 영역 다툼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가 숨졌을 때도 한국교회 교회 내부에서는 선교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뿐. 변한 건 하나도 없다. 8월 30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에 들어가기 전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두 마디를 던졌다.


   "이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아직 각 선교단체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있다". (2007. 8. 30. 뉴스앤조이 / 이승규)

 

 


               “선교 못 갈 곳 없고 못 만날 사람도 없다”
                 이용규 대표회장 “선교행위가 왜 문제되는가” 
 

   이용규 대표회장은 선교행위 비판여론에 대해 강력히 항변했다. ⓒ김대원 기자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42일 만에 두 명의 희생자를 낸 가운데 막을 내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교회는 ‘해외선교사 위기관리기구’를 창설하기로 하는 등 아프간을 비롯한 위험지역의 선교 중단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용규 목사는 아프간 피랍사태가 해결된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선교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 선교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프간 피랍사태가 42일 만에 종결됐다. 도중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가 살해당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모두 석방이 됐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 달라.


   “먼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사태를 해결해 주셔서 감사하다. 피랍자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수고한 정부 관계자들, 협상단들, 국민들, 기도해 준 성도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하게 희생된 故 배형규 목사와 故 심성민 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너무도 안타깝다. 또한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사태 이후 한기총과 KWMA는 ‘해외선교사 위기관리기구’를 만들기로 하는 등 해외선교에 신중을 기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칫 이번 일로 해외선교가 위축되지는 않을지, 또한 기독교계의 선교활동 자체에 대한 국내의 비판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선교는 못 갈 곳이 없고 못 만날 사람이 없다. 선교는 이념이나 신조가 아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스 선교사는 그 당시 현실로 보면 억울한 죽음이었겠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하는 ‘썩어지는 밀알’이 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피를 신원하시고 세계 교회사의 기적처럼 한국교회를 부흥시켜 주셨다. 아프간에도 언젠가 부흥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안티세력들은 무신론적 차원에서 그들이 왜 국가가 금지한 위험한 곳을 갔냐고 하지만 그들의 아프간 방문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싸매고 위로하고 가르치기 위한 섬김과 봉사였다.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6.25 등으로 인해 피폐할 때 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마땅히 가난하고 피폐한 외국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사태로 인해 안티기독교로 보이는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이 기독교의 선교로 인해 국고가 낭비된다는 것인데, 우리가 기독교의 선교에 대해 반성할 점이 있는 것인가.


   “한국교회가 반성할 점이 있다면 선교영웅주의나 산발적인 선교 태도에 대해서는 반성할 수 있다. 보다 차분하고 깊이 있게 신중한 선교를 해야 한다. 특히 회교권에서 종교간 대결로 문제가 비화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지혜롭게 선교해야겠다.


   그러나 선교행위 자체를 비판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종교의 자유는 인권이기에 어떤 종교이든 그들의 선교행위를 막아서는 안 된다. 또 이번에 아프간에 간 이들은 무엇보다 선교보다는 봉사를 위해 갔고 그런 숭고한 정신을 가진 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탈레반은 비판하지 않은 채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왜곡된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기독교계가 너무 조용했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는 말도 있다.


   “종교간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기에 발언을 자제하며 조용히 기도한 것이다. 한기총도 이런 방침에 따라 활동을 자제하며 주의해 왔다. 한기총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화관광부에 국장급 임원을 파송해 사태 추이를 지켜 보며 대응책을 함께 논의했으며 피랍자 가족들을 방문해 위로했다.”


   -한국교회가 이번 사태로 인해 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이제 교회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더욱 철저히 회개하며 자기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사회에 도전과 자극을 줄 수 있는 힘 있는 기독교가 되면 좋겠다. 요즘 학위 비리와 관련해 교회 내 학위 위조를 교단이 자체적으로 자정할 수 있는 운동도 펼치면 좋겠다.”(2007. 8. 31. 크리스천투데이 / 김대원 기자)

 

 

 

            선교단체, "협상테이블에 우리가 나선다"
                탈레반과 선교금지조항에 합의한 것은 유감 
  
   세계선교협의회와 주요 선교단체 대표자 등 20여명이 모여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사무실에서 '아프간 피랍사태 사후대책 1차 실무회의'를 열어 한국정부에는 감사를, 국민에게는 죄송함을, 살해된 인질가족에는 안타까움을 표현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탈레반과 선교금지 조항에 합의 한 것은 깊은 우려라고 표현했으며,  앞으로는 한국선교사위기관리기구를 강화하여 향후 위기관리에 대응하며, 봉사자 피랍이 있을 경우, 정부가 협상창구로 나서지 않고 세계봉사연합기구 내 위기관리기구가 전면에 나서 위기관리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는  아프간이나 다른 모슬렘국가에도 계속적으로 선교할 뜻을 비춘 것이다.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는 피랍자석방 소식을 듣고서 "피랍자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정부 관계자, 협상 대표단과 아프간 정부 등 국제 사회 모두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일로 인해 아프간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해, 향후 아프간 선교에 대해서 계속 선교할 뜻을 비쳤다.   
 

아프칸 피랍사태 한국교회 사후대책 1차실무회의록  
 
아프칸 인질석방 소식을 듣고 기독교계 선교책임자들 20명이 모여 이후 아프칸 피랍사태 사후대책에 대해 대처방안 (2007년 8월30일)을 논의한 결과, 다음과 같이 의견을 모았다.
 

1. 이번 인질석방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국민의 인내와 사랑, 언론계의 일관성 있는 보도 그리고 모든 노력을 다해 준 정부관계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2. 이번 단기해외봉사팀의 사건으로 전 국민에게 심려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3. 샘물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이번 단기해외봉사팀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아프칸 봉사에 나선 점을 재확인하고,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두 사람 배형규목사와 심성민씨에 대해 그 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4. 인질협상에 임한 정부는 갖은 노력과 자국민 보호 차원의 모든 조치를 이해하면서도, 탈레반과의 공식합의에서 아프칸 내에서의 기독교 선교금지라는 조항에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이웃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교계로서는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5. 한국선교계는 2004년 제4회 한국선교지도자대회 전략회의에서 합의한 선교사위기관리 지침서를 수정 보완하고 한국선교사위기관리기구를 강화하여 향후 위기관리에 대응하고자 한다.
 

6. 한국교계는 향후 세계봉사연합기구를 설립하고 위기관리팀을 운영하여 모든 단기해외봉사팀의 위기적 상황에 대처할 것이다. 봉사자 피랍 경우, 우리는 정부가 협상창구로 나서지 않고 세계봉사연합기구 내 위기관리기구가 전면에 나서 위기관리를 함으로써 기독교봉사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고자 한다.
 

7. 이제는 한국도 세계 구호, 봉사에 더욱 적극 나서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는 우리민족사의 어려운 시절, 특히 6․25한국전쟁 이후 혼란기 속에서의 세계 각국의 도움의 손길을 기억하고 동시에 이번 의료 학교 봉사팀의 순수한 정신을 기리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행하는 정부방침을 적극 존중하며 사랑의 봉사정신을 가지고 더욱 더 적극적으로 활동 할 것을 바란다.
 

8. 한국 교계는 향후 해외에서의 대규모 봉사활동을 피할 것이며 현지인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순결하고 지혜롭게 소규모 팀으로 활동 할 것을 결의한다.
 

9. 우리는 사랑의 봉사든 복음전파든 현지인들과 현지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지인들을 존중하는 토착화 봉사 및 선교를 수행하여 겸손하고 예의 있는 태도를 견지해 나가도록 할 것이다. (2007. 8. 31. 에클레시안 / 황규학)

 


         무자비한 탈레반에 너무 관대한 대한민국 
         납치.살인하고 “기독교인은 오지말라” 경고...국내 비판은 전무 

 
   아프간 피랍사태가 43일 만에 2명의 희생자를 낸 채 종결됐다. 인질 전원 석방 소식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지만 기약이 없었던 19명의 석방이 실현된 것은 같은 국민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을 보면 이런 반가운 석방 소식들에 달리는 댓글이 심상치 않음을 볼 수 있다. 기쁨을 표현하기 보다는 ‘국가적인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번 피랍사태의 모든 근본적인 원인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간에 직접 찾아간 봉사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이들을 강제로 납치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 탈레반 무장단체에 있다. 특히 이 봉사단의 주된 목적은 선교보다는 봉사였다. 현지 아프간 주민들이 이들이 다시 돌아오길 원하는 것은 봉사단이 얼마나 현지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강제로 잡아 협상의 도구로 이용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 탈레반의 행태를 비난하는 글은 찾기 힘들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없는 탓인지 탈레반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납치는 적들을 압박하는 데 있어 돈도 안 드는 좋은 전략”이라며 앞으로도 납치를 계속하겠다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여론 중에는 봉사단의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설사 봉사단이 선교를 전제로 봉사활동을 펼쳤다하더라도 선교의 자유 자체는 비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 안에는 선교의 자유도 포함돼 있다. 신앙의 자유는 천부인권이다. 즉 신앙을 강제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선교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 자체를 억압하고 정도를 지나쳐 납치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야만적인 행위는 천인공노할 짓인 것이다. 실제로 아마디 대변인은 “아프간은 이슬람 국가”라며 “이를 수호하기 위해 적과 싸우겠다. 기독교인은 선교하러 오지 말라”고 기독교에 매우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작 이슬람은 공격적 선교로 전 세계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은 타종교의 선교를 용납할 수 없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처럼 탈레반의 문제를 보지 못한채 순수한 선교활동 자체를 비판하는 해괴한 시각은 속히 개선돼야 한다.


   왜곡된 여론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가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바로 故 배형규 목사와 故 심성민 씨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일이다.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았을 만큼 순수한 사랑의 봉사자들이었다. 주검의 온몸에 관통된 총상은 탈레반의 무자비함을 또 다시 보여준다.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 잊혀져선 안 되겠다. (2007. 8. 31. 크리스천투데이 / 이지희 기자)

by 대마왕 | 2007/09/08 11:31 | Faith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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